애님, 여기도 눈이 내렸어요. 많이 쌓인 것은 아니지만.
동인지 발송을 다 못해 오늘 우체국에 갈 때 눈을 밟을 수 있구나란 생각을 합니다. '우체국'이란 말만으로도 저는 아직 설렙니다. 이제는 편지를 보내고 받는 일이 거의 없으니 그 설레임도 아주 가끔 느끼지만요.
애님은 벌써부터 작업실을 갖고 계시다란 생각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공간은 아니고, 마음 속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공간이니까요. 꿈이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의 작업실이며 자신만이 드나드는 공간이지요.
생각해 보니 연습실을 갖고난 다음부터 공부에 더 게을러진 듯합니다. 연습실을 갖고 싶어하던 그 절절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내년엔 시며 소리를 더 열심히 공부하리란 계획을 세워 봅니다. 시와 소리, 두 가지 모두 제게는 즐거운 고통의 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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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잎들의 폭설
전동균
눈 쌓인 금장리 참대밭
휘어져, 한껏
휘어져
마침내 세상 밖으로 탈주할 것 같은
이 팽팽한 떨림 속에
휙,
새 한 마리 지나가자
순간, 있는 힘 다해
눈을 터는 댓잎들
제 몸을 때리며
시퍼렇게 멍든 제 몸을
제가 때리며
참회하듯 눈을 터는 댓잎들은
어찌 이리 맑은 빛을 내뿜는지
어찌 이리 곧은 생을 부르는지
속수무책, 나는
갈 곳 없는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