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너도밤나무
박남준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내던 날이 있었다
대답 없는 이름을 부르고는 했다
늙은 너도밤나무의 몸 안은 이제 텅 비어 있다
아주 가끔 그 곁에 앉아 겨울 해바라기를 했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너도 너도밤나무이려는가
*
매일매일 시를 꿈꾸며 그리워하는 내게
시는 돌아오지 않는 편지며, 대답없는 이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4,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덕분인 것 같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4학년 때의 선생님께서는 국화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분이셨고, 서울로 전학을 가 어리둥절하던 5학년 때의 선생님께서는 일기 검사를 하시며 제자의 마음을 살펴주시던 분이셨다.
국화를 온갖 모양으로 재배하시던 선생님은 지렁이가 토양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늘 칭찬하셨고, 그 당시 비료였던 분뇨의 쓰임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없이 직접 보여주고 가르쳐 주신 분이다.
일기 검사를 꼼꼼히 하시던 선생님은 전학오자마자 시험을 쳐 꼴찌를 한 나를 위해 반장 옆에 앉혔다. 공부 잘하고 친절한 반장의 도움으로 나는 다음 시험에 2등을 했다. 그것은 학창시절을 통털어 제일 잘한 성적인데, 선생님보다 더 쉽게 잘 가르쳐 주던 짝꿍 덕분이였다.
쓸 게 없는 날은 일기장에 동시를 썼는데 선생님께서 그것을 아주 특별하게 여겨주셨다. 어느 날, 내가 쓴 동시에 직접 그림을 그리셔서 뒷칠판에 붙이셨다. 나는 깜짝 놀랐고 그런 선생님의 자상함에 어찌나 감동했던지......
그 때부터 시를 썼나보다.
내 시작의 근원 같으신 이 두 분 선생님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쓸 때마다 두 분 선생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따스해지고,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서로 연결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 마음, 어린 제자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던 스승의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토록 깊이 내게 남아있을 수 있을까!
시를 그리워하다 늙은 너도밤나무처럼 내 몸 안이 텅 비어도 괜찮다.
내가 쓴 편지, 시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 밖 세상이 온통 내 것으로 가득하니까!
*
구름바다 님,
오늘 아침은 언제나 그리움의 시를 끝도 없이 쓰고 계신 구름바다 님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그리움의 주인공은 비록 대답없지만 구름바다 님의 가슴 깊은 곳에 살며 끝없이 시를 뿜어 올리게 해주시니 그것이 곧 길고 긴 대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