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선생과 학생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경쾌하고 편안하다면 스승과 제자란 말은 정중하고 신뢰감이 느껴진다. 예전엔 학교에서만 선생님을 만났지만 지금은 학원이나 생활 속에서도 만날 기회가 많아서 선생이 흔하다. 또 상대방을 부르기 애매할 때도 선생이란 말을 쉽게 쓴다. 반면에 스승이란 말은 큰 가르침을 주는 분처럼 여겨지고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처럼 호칭에서부터 경건함이 느껴지고 삶의 목표를 제시해주는 좋은 스승이 곁에 있다면 그 삶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할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학교 뒤뜰에 각양각색의 국화 모종을 심어놓고, 수업을 마치면 혼자 연구하셨다. 거름을 주고 흙을 만지며 새로운 국화 재배에 몰두하는 선생님을 통해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법과 흙에 양분을 주는 지렁이의 고마움을 배웠다.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려 시커먼 얼굴의 남자 선생님이 마디 굵은 손으로 풍금을 치며 열정적으로 수업하던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할 때 가장 사람답다고 하신 말씀은 어린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적이나 공부가 아닌 흙 한 줌, 꽃 한 송이에 삶의 의미를 두셨기 때문이다. 수업을 즐겁게 이끌고 틈만 나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국화 재배법을 가르쳐 주던 선생님, 언제 어디서나 자연과 함께하라던 말씀과 부지런함이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좋은 스승이란 제자가 사람답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에 뜻을 두고 올바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황금에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사람다움이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본인이 그렇게 살아가는 분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스승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좋은 스승 한 분을 지지자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차고 삶의 목표를 잃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스승의 권위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내 주위엔 그런 것에 연연치 않고 제자를 위해 마음을 다하며 살아가는 분이 많다. 짧은 배움일지라도 서로 예의를 갖추고 정성을 쏟는다면 스승과 제자로서 깊은 울림을 주는 만남이 될 것이다.
박경화 <소리꽃하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