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道와 養性
아는 분의 집에 놀러갔더니 앉은뱅이책상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아버님이 쓰던 것으로 55년이 되었다는 그것은 나왕으로 만들어졌고 검은색 칠이 되어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아버님을 추억하며 오래 간직하고 싶다기에 나는 골동품 수리 가게에 맡겨서 검은색 칠을 벗겨내고 망가진 서랍도 고치자고 했다.
며칠 후 나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예쁜 나뭇결은 볼 수 없지만 시커멓던 책상이 말끔하게 수리되었다. 우리는 매우 만족하며 고인이 된 각자의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수리비로 새것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낡은 책상과 함께 하는 아버지와의 교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지게 했다.
나 역시 아버지가 물려준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는 유학생활중인 내게 편지를 자주 보내주셨다. 내가 명심해야 할 부분에는 꼭 붉은색 밑줄을 그어두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 붉은색은 연해졌지만, 공부하느라 멀리 있는 딸을 위한 아버지의 걱정과 자상했던 마음은 갈수록 진하게 물드는 듯하다. 빛바랜 편지를 꺼내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그리움에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가 도자기 체험에서 손수 만든, 백자에 청화 글씨로 ‘正道’라고 쓴 항아리는 내게 소중한 보물이다. 초보자의 솜씨라 가마에 구울 때 실금이 가고 모양도 어설프지만 아버지의 글씨체를 감상하고 꽃을 꽂기엔 부족함이 없다. 정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잘 지켜 바르게 살라고 늘 말씀하시며 그중에 특히 신의(信義)를 강조하셨던 아버지. 나는 오늘도 항아리에 꽃 한 송이를 꽂아두고 아버지의 마음처럼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석재 서병오의 ‘養性’이란 글도 곁에 두고 생활의 지표로 삼고 있다.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을 잘 기르고 수양하라는 뜻이 좋아서 구입한 것이다.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 잘 계발시키는 것이 우리 삶의 기본 과제라고 여기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얼마나 부지런히 자신을 계발시키며 내적인 수양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부모님과 스승, 사회의 선배를 만나 인생 상담이나 정겨운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시대다.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닐지라도 깊은 뜻의 글귀 하나 정도는 생활 지침서로 삼고 바쁜 중에 자신만의 사색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박경화 <소리꽃하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