絃을 위한 아다지오*
노혜봉
마음이 스산한 날에는 푸짓감에 풀을 먹이기로 한다. 장 한쪽에 쑤셔넣었던 이불 호청과 베갯잇을 꺼내 미안하다 미안하다 손바닥으로 구김살을 펴준다.
한 대접 남은 찬밥을 양푼에 옮겨담고 물을 넉넉히 부어준다.
다정함이 제대로 붇기까지는 기다려야 된다고 혼잣말을 뇌인다.
찬장 서랍 아래 맨 뒷쪽에서 풀주머니를 찾아낸다. 풀어진 실밥을 꿰매며, 마음씀은 튼튼한 무명실로 촘촘하게 박아둘 걸. 거센 힘에도 여린 맘 미어지지 않도록 창구멍은 넉넉히 내어둘 걸. 오지랍을 탓해 보기도 한다.
풀자루 입술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고 조금씩 물을 밀면서 풀자루를 치대기 시작했다. 부칠 곳 없는 미련이 이리저리 마구리로 몰아붙였다. (정신을 차리고 그만 눈을 좀 떠봐. 네 참모습을 드러내 봐.)
나는 노여움에 긴 목을 꽉 그러안았다.
살아오면서 방망이질로 다듬이질로 얼어터진 손등과 뒤꿈치가 피맺힌 속살을 보이면 그때마다 해어진 이불깃은 제 등을 뒤척이며 뼈저린 바람을 막아주어야 했다. 나는 자꾸 가슴뼈 아래에다 풀물을 빳빳하게 먹이고 있었다.
사르락사르락 뜰 한귀퉁이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 현을 위한 아다지오 : 바버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