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
폭염의 한가운데입니다
뜨거운 날들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한 마음은 더디 가길 바라기도 합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
연신 덥다 덥다 했던 힘겨움이 그치기는 하겠지만
정신없이 가 버린 시간이 또 허무해질 것 같아서입니다
더위에 지쳐 시 한편도 읽어 내기 힘들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 잡고 지금을 살아야겠습니다
그것만이 이 더위와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은 물빛 시토론 날입니다
뜨거운 시간을 더 뜨거운 시 토론으로 식히면 될 것 같습니다
물빛님들 폭염에 건강 더욱 신경 쓰시고
밝은 얼굴로 저녁 7시 인더가든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