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님, 고맙습니다.
바다가 단풍드는 것을 보아낸 시인은 참 섬세한 눈을 가졌군요.
그렇군요. 미풍에 말려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어느 이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려고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정말 고운시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늘 고맙습니다. 보리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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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방
문성해
풋완두콩 껍질 속에
다섯 개의 완두콩 방이 푸르다
완두콩을 훑노라니
껍질과 콩이 초록의 탯줄들로 연결되어 있는 게 보인다
작은 놈에서 큰놈까지 한 놈이라도 놓칠세라
껍질은 탯줄을 뻗쳐 악착같이 붙잡고 있다
밭 너머가 저수지라서였을까
엄마는 나와 동생을 나무에 묶어두었었다
해질 때까지 밭에서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고 계시던 엄마
나와 동생이 조금만 안 보여도 허겁지겁 쫓아오셨다
딴 데 가면 안된다 여기 있어야 한다
엄마가 퉁퉁 불은 젖을 동생에게 물리러 올 때까지
동생과 나는 전지전능한 줄의 반경 아래서 놀았다
엄마가 훌쳐놓은 그 줄을 타고 개미들이 내려오기도 하고
탱탱하게 당겨지면 줄은 짧게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다
엄마 젖퉁이에 푸르딩딩하게 뻗친 힘줄을
동생이 빨아먹는 거라고
그래서 동생의 똥이 푸르다고 생각하던 그때
하늘 전체가 푸른 방이었다
나무도 너럭바위도 저수지도 모두 초록의 탯줄로 땅에 매달려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그때
세상은 막 물오른 완두콩 속처럼 안전하였다
푸르른 콩깍지 속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완두콩들
방이 깨지고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몇놈이 훌쩍 어디론가 내빼고 만다
억지로 떼어낸 젖꼭지 같은 탯줄에서
연녹색 젖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