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관 저녁 갯벌과 거기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 52살의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쓴다.
-김훈 에세이,『자전거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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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님, 혹자는 문장의 지나친 현란함 때문에 이 작가가 싫다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의 생명을 풍문이나 환영>으로 느껴본 영혼의 특권이 아닐는지요.
<갈 수 없는 길을 동경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애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애님만의 문장을 만들어오는 여행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