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카톡에서 하이디 님이 공개한 <아깝다> 시와
서강 님의 <사월의 보폭>에 대한
토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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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의 원문은 사진 파일로 올렸기에
홈피에 옮겨지지 않아 제가 타이핑 했습니다.
아깝다
하이디
봄볕이 쏟아진다
담기는 데 없이 흘러내린다
앵초야 지칭개야
그릇을 내어놓아라
병 속의 빗물처럼 받아라
어디에도 쓰이지 않은 것이
그냥 내려 흩어진다
마흔 살 옆집 처녀의 세월 같이
훤칠한 키
보드라운 마음
누구에게도 담긴 적 없어
쓰임 없이 낡아가는 것
마름질 안한 옷감 같이
입을 수 없는 봄볕이
흘러내리고 있다
==== 하이디 님, <아깝다>는 시가 퍽 마음에 듭니다.
다만 1련의 쏟아진다와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동시동작 같아서 시차를 두어 쏟아진 봄볕이 흘러내리는 광경으로 묘사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릇을 내어놓고 병속에 빗물처럼 받으라고 하는데 왜 하필 "병속에 빗물처럼"이어야 하는지
요? "병속에"라는 말을 빼고 1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 어떨는지요?
봄볕이, 쏟아지는 봄볕이
담기는 데 없이 흘러내린다
앵초야 지칭개야
그릇을 내어 놓고 아까운 봄볕
빗물처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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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선생의 <사월의 보폭>에 대한 토론
사월의 보폭
전 영 숙
성큼
산이 다가 와 있다
거인의 한 발
저 큰 보폭의 사월
큰 덩치를 흔들며
어깨를 들썩이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날아오를 듯
와장창 창이 깨진다
벽이 무너진다
내 방에 범람하는 초록
오래토록 헐벗은 침묵이
말라비틀어진 말이
한없이 부드럽고 연해진다
실바람에도 부풀고 춤춘다
뒤집힐 때 더욱 반짝이는 말
솟구칠 때 더욱 깊어지는 침묵
물오른 거인의 몸
흘러 넘치는 산의 수다를
두 눈 가득 듣는다
======= 봄이 와서 초록으로 물드는 산을 거인으로 표현한 것이 신선하네요.
그런데 큰 덩치를 가진 산이 <날아오를 듯/ 날아오를 듯>하는 것이 (나의 감각으로는) 크고 무거운 산에는 조금 무리해 보이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의 "산의 수다를"에서 <수다>라는 말이 무거은 거인같은 산에게는 조금 덜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조금 고쳐보았는데 어떨는지요...? 어쨌든 전영숙 선생의 시적 발상은 늘 신선하고 좋으네요.
==== 아래의 시는 서강님이 수정하신 시입니다.
사월의 보폭
전 영 숙
성큼
산이 다가 와 있다
거인의 한 발
저 큰 보폭의 사월
큰 덩치를 흔들며
어깨를 들썩이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와장창 창이 깨진다
벽이 무너진다
내 방에 범람하는 초록
오래토록 헐벗은 침묵이
말라비틀어진 말이
한없이 부드럽고 연해진다
실바람에도 부풀고 춤춘다
뒤집힐 때 더욱 반짝이는 말
솟구칠 때 더욱 깊어지는 침묵
물오른 거인의 몸
부푸는 산의 근육과 힘줄에
두 눈과 귀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