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에 카톡에 올려주신
하이디 님의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에 대한 토론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
정해영
이른 새벽 누가
불을 때는지
굴뚝에 연기가 난다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
일찍이
그렇게 일찍이 일어나야만 되었다
울컥 할 때 마다 꽃잎이
벌어진다
연기처럼 물컹물컹
솟아오르는 수국
어둠을 지나온
새벽의 모든빛이 스며 있다
일찍이
그렇게 일찍이 일어나야만
얻을 수 있는 빛
이른 새벽
누군가의 아침을 짓는
굴뚝을 오르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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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제비꽃 또는 보라색이니 이 시 제목의 의미는 [보랏빛 또는 분홍빛 새벽]이 되겠지요. 아마도 이른 새벽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새벽의 여명 혹은 이른 아침 놀빛에 반사되어 보랏빛과 분홍빛으로 보이는 것을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랏빛을 구태여 바이올렛이라고 쓴 것은 아마도 중의적인 효과(제비꽃과 보랏빛)를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굴뚝의 연기는 밤의 “어둠을 지나서” 이제 여명으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새벽의 모든 빛이 스며”있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빛을 띄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른 새벽에 누군가가 아침을 짓느라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의 빛깔인데 시인은 그것을 범상하게 보는 게 아닙니다.
그 빛깔 속에는 아침을 짓는 누군가의 근면한 노동과 가족을 위한 마음, 그리고 밤을 지나온 새벽의 역사가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그 빛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인데 그것을 시인은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으로 아름답게 명명한 것입니다. 그 착상의 시적 의도가 퍽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시상의 전개에서 의미상으로 약간의 혼란이 보여 독자에게 전달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1) 2련의 2-3행, <일찍이/ 일어나야만 되었다>는 구절이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2) 굴뚝에서 울컥 할 때마다 꽃잎이 벌어지는데 그것을 <연기처럼 물컹물컹/ 솟아오르는
수국>으로 묘사했지요. 그런데 굴뚝에서 나오는 꽃처럼 보이는 <연기>를 <연기처럼 물컹>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상합니다, 연기를 꽃잎에 비유한 것인데 그것을 다시 연기처럼이라니요....
3)마지막 련의 <누군가의 아침을 짓는/ 굴뚝을 오르는 꽃>이란 구절도 어딘가 좀 어색합니다.
이 시를 제가 썼다면 과감하게 줄여서 다음과 같이 고쳐보겠습니다만, 정해영 시인은 저하고취향이나 성향이 다르니 참고만 하시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 퇴고해 보십시오.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
정해영
이른 새벽 누가
불을 때는지
굴뚝에 연기가 난다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으로
새벽을 여는 저
꽃으로 피어나는 연기
아직 여명의 도시에서 오직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신비한 저 빛
누군가의 아침을 짓는 손길을 떠나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바이올렛 또는 분홍빛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