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나태주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ㅡ 계간 <시와시학>(2004 여름호> 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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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이원규 시집 『옛 애인의 집』(2003)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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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를 소재로 한 시들을 인터넷으로 읽다가
옮겨봅니다.
이 행위도 저작권법에 위배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합니다.
많은 시들이 산문화되고 있는데
젊은 김선우 시인의 시 <능소화>도 한 번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