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쥐를 보내다
내가 사는 집에는 딸아이가 얻어 온 햄스터와 토끼, 또 사막쥐 두 마리가 함께 산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파트에 살지만 일이 그렇게 됐다. 매일 서너 번씩 모이를 주고, 그들의 삶을 염탐한다. 햄스터는 짧은 기간에 번식이 잘 되어 일개 소대를 이루었다. 삼 년 전에는, 딸의 홈피를 통해 누구든지 잘 키울 마음만 있으면 택배로 보내준다고 광고까지 해서 여러 마리를 분양하기도 했다.
손가락 셋을 포개놓은 굵기의 사막쥐 두 마리는 햄스터에 비해 훨씬 점잖고 예의바르고 부지런했다. 그들은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다. 얇은 종이 상자를 넣어주면 그곳에만 배설물을 모으는 깔끔도 떨었다. 원래 우애 깊은 품종이라더니, 마른자리 진자리를 스스로 정돈할 줄 아는 그 기특함 때문에 귀를 쫑긋대는 토끼 못지않게 관심이 갔다.
어느날 나는 사막쥐의 집을 청소하면서 아주 잠시 햄스터 통에 그 녀석들을 옮겨 놓았었다. 자기네 영토를 침범했다고 생각한 햄스터들이 그만 사막쥐를 공격했나 보았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만 셈이었다. 사막쥐 하나는 특히 아랫배 깊숙이 상처가 났다. 말도 못하는 것이 종일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연고를 발라주고 주사도 주었다. 그 후 겉으로 볼 때는 부지런히 설치며 예나 다름없이 놀고 있었지만 녀석은 계속 아팠던가 보았다. 몸을 구부린 채 움직이지 않을 때는 베이지색 털이 바르르 떨리거나 곧추서 있곤 했다. 친구 사막쥐는 밤이면 자신의 체온으로 그 다친 몸을 덮어 재우고 있었다.
베이지색 작은 것은 점점 말라갔다. 무슨 영양제를 줘야 하나. 지난날 네가 우리집에 왔다고 푸념한 것을 용서해라. 너를 귀찮아한 것도 용서해라. 제발 낫기만 해라. 나는 입속으로 입 밖으로 중얼거리며 안타까워했다. 채소 잎, 곡류, 과일 조각, 견과류 들을 번갈아 주었다. 그러고는 나도 일에 쫓겨 돌아다녔다. 녀석의 몸이 차차 가을 낙엽처럼 물기가 빠지고 앙상해졌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곧 낫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아침, 그 마른 가랑잎이 보이지 않았다. 으잉? 종이상자가 원래 위치가 아닌 반대편으로 옮겨져 있어 급한 김에 확 들춰보았다. 친구 사막쥐의 정성이었다. 밤새 종이상자를 끌어다가 싸늘해진 그 사막쥐를 덮어둔 것 말이다. 나는 덜컥 겁부터 났다. 놀랍다는 생각보다 단념이 먼저였다.
서둘러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휴지를 풀어 그 싸늘한 주검을 들어올려야 했다. 떨렸지만 침착하게 일을 수행해야 했다. 내가 그 시신에 손을 대려고 하자, 홀로 남게 된 사막쥐가 갑자기 내 손으로 달려오더니 휴지를 할켜내며 대들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친구의 주검을 함부로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거인 같았을 내 손은 그 가랑잎을 들어올려 신문지에 싸고 급기야 모종삽과 함께 아파트 1층 땅으로 내려오고야 말았다.
내 진심은 정말이지 너를 아끼는 마음이었는데 잘 보호하지 못했구나. 양지바른 곳, 키가 훤칠한 노송 아래로 갔다. 삼월이었지만 땅은 딱딱했고 모종삽에는 돌멩이가 걸렸는지 흙이 제대로 파지지가 않았다. 녀석의 몸 세 배 정도의 구덩이에 나는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그 가랑잎을 눕혔다. 등을 새우처럼 구부린 마르고 딱딱한 그것 위에 흙을 덮었다.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돌을 골라내며 자꾸 흙을 덮었다. 자거라, 정든 긴꼬리사막쥐야! 세상에 나와서 나의 실수로 이렇게 생을 버리고 가다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곧 봄이 한창이면 나는 가랑잎 같이 말랐던 녀석의 몸을, 그것을 만진 촉감조차 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 탓이라는 이 자책 때문에 사는 일이 몹시도 숙연해진다. 친구 사막쥐의 애도를 묵살한 나는 얼마나 매정한가. 홀로된 슬픔을 이해할 겨를이 없었던 나는 그와는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무릇 생명 있는 것들과 이별한다는 것은 꿈을 하나씩 버려야 하는 일 같다. 몸을 묻어야 하는 이런 이별을 사람들은 허공에 꿈을 버리듯 하며 잊는 것일까. 허공은 푸르고 봄 햇살은 생명을 키우고 있는데 말이다.
********* 2010년에 쓴 산문입니다.
읽어보니 제가 미워지네요. 잘난 척하며 살고 있지만 얼마나 과오가 많은지, 왜 세상을 배우는 일에 이리 인색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공개합니다.
다들 무사하시고, 건강히 뵙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