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ㅡ허수경
나는 그렇게 있다 너의 눈 속에
꽃이여, 네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너를 바라보던 내 눈 속에
너는 있다
다람쥐여, 연인이여 네가 바삐 겨울 양식을 위하여 도심의 찻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때
바라보던 내 눈 안에 경악하던 내 눈 안에
너는 있다
저녁 퇴근길 밀려오던 차 안에서 고래고래 혼자 고함을 치던 너의 입안에서
피던 꽃들이 고개를 낮추고 죽어갈 때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달려가다 싣고 가던
얼어붙은 명태들을 다 쏟아내고 나자빠져 있던 대형 화물차의
하늘로 향한 바퀴 속에 명태의 눈 안에
나는 있다
나는 그렇게 있다 미친 듯 타들어가던 도시 주변의 산림 속에
오래된 과거의 마을을 살아가던 내일이면 도살될 돼지의 검은 털 속에
바다를 건너오던 열대과일과 바다 저편에 아직도 푸르고도 너른 잎을 가진
과일의 어미들 그 흔들거리던 혈관 속에
나는 있다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뻘게를 찾는 바닷가
작은 남자와 그 아이들의 눈 속에 나는 있다 해마다
오는 해일과 홍수 속에 뻘밭과 파괴 속에
검은 물소가 건너가는 수렁 속에
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눈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에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다
* 허수경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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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신형철 평론가의 '격주시화(隔週詩話)'라는 코너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연재를 마친 듯합니다. 인터넷으로 거기서 읽고 가져왔습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7732.html#csidxf1581b9c8dd2b6e84f317dd754d0f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