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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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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9 00:01

진지한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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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Black Swan)을 찾아서

월요일은 목회자들이 쉬는 날입니다. 신도시 주변 상가 2층에서 목회 시작한 지 5년, 고전을 면치 못하던 목사님이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고 오겠다 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고 저처럼 심드렁한 사람은 매달릴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당신 가면 나도 가보고 싶네요!” 전화 끊고 부랴부랴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헛바퀴 도는 일상을 탈피하려고 작정했을 때의 기분, 어떤 건지 아시죠? 집안 사정은 당분간 팽개치고, 빠뜨리면 불편해질 2박 3일의 준비물만 중얼중얼 외면서 가방을 챙겼습니다. 짐 부피는 줄여야 폐가 되지 않는 법. 못다 한 일은 갔다 와서 어떻게든 하면 되니까, 널브러진 것들 눈에 보이는데도 동대구역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대전 거치면서부터 차창에는 눈바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영등포역에서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부개에서 내렸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았던 목사님과 접선,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 부근까지 갔습니다. 눈발 속에 G교회의 우뚝 솟은 성전이 보였습니다.
집회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늦게 도착한지라 곧장 지하에 있는 예배 처소로 내려갔습니다. 가히 200여 명 되는 사람들이 어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하 예배당은 따뜻했고 진지했고 알 수 없는 경건으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200여 명이 한 마음일 수 있다는 것. 그 자리에서 신종 코로나 따위는 아무도 생각지 않은 듯 했습니다. 300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예배당 안에서 뜨거운 집회가 끝나자 밤 한 시가 됐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별로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침구류가 문 앞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각자 앉았던 자리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이불을 폈습니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아도 절로 알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도 단란하게 이부자리를 펴고 내일 아침 집회를 기다리며 잠을 청했습니다. 삶의 고된 문제들로 씨름하는 우리는 오직 성경이 전하는 그 말씀(Logos)이 나의 말씀(Rhema)으로 와 닿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누워 생각하니, 저는 너무나 제멋대로 게으른 족속이었습니다. 우리는 답을 얻고자 애썼습니다. 이 일은 결코 기복신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무릎 꿇고 간구하는 그분들 옆에서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기도 했고, 또 조금은 거북스럽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신앙 체험은 각기 달라도 간절한 열망만은 하나였습니다. 집회를 통해 의외로 우리 안에는 과거, 무속의 영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는 간증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할 수도 있으나, 읽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 같아 말을 아껴야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기를 꺼내지나 말 걸 그랬나요?

다시 일상에 돌아왔습니다. 집을 나설 때의 설렘은 무덤덤하고 썰렁한 안도감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막이 내렸으니까요. 집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대로 있더군요.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들어오자 집안의 공기가 뒤로 밀려났습니다. 청소기 돌리고 세탁기에 빨래 집어넣고 설거지 하면서 물을 끓입니다. 부엌이 돌아갑니다. 예전 흉내를 내봅니다. 곧 익숙하게 파묻혀버리고 말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숨 쉬지 않으면 누구도 나의 숨쉬기 운동을 도울 수 없다는 이 압박감, 기계를 벗 삼아 하고 싶은 말을 건네 봅니다. 그대가 납득이 안 돼 속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내 허물은 덮고 그대 허물은 따지고 들었습니다. 내로남불 이야기처럼 당신의 둘레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내 뜻과는 달라도 팽개칠 수 없는 것들. 팽개치면 고장 나는 삶. 그래서 안 보이는 것들을 찾아 만나고자 하는 일, 찾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일. 알 수 없는 일을 통해 알게 되는 비밀들. 자원봉사자들의 그 평안한 미소. 생의 지평을 확장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는 요 며칠이 2월의 막바지 추위를 맛보는 날들이었을 수 있고 봄 마중 하는 심정으로 노란 개나리를 찾는 날들이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곳에서는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아 응답받으려는, 절망의 고비에서 쓰러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나날이었던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 나 역시 마음의 어둠을 풀어내려고 달려간 곳이 있었으니까요. 우리에게 미래는 무엇일까요? 10년 뒤의 일을 안부 물어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의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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