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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스/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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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우리 역사 속에 우뚝 서 있는 아이
여기 좀 보세요. 1920년대의 고등보통학교 교실입니다. 1920년대라 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때이니 참으로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었겠네요. 그리고 고등보통학교란 지금의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형태로 학생들이 보통 말썽꾸러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 학교에 '한창남’이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남이의 별명은 '만년 샤쓰'였습니다. 만년필도 아니고 만년 샤쓰라니요. 도대체 이 아이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사실 창남이는 장난기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불이 날 위험이 있으니 성냥 한 개비도 무섭게 여겨라’고 말씀하시면 창남이는 곧바로 이렇게 받아치곤 했죠.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여 큰 홍수가 나는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느니라.” 그러면 아이들은 모두 배꼽을 잡았고 선생님도 그만 웃고 말았죠.

아이들은 모두 창남이를 좋아했습니다. 늘 밝고 명랑한 아이, 또박또박 말도 잘 하고 씩씩하게 지내는 아이. 창남이는 그런 아이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창남이가 남 몰래 가난에 몸서리치고 있었던 것을요.

어느 추운 겨울 체조 시간이었어요. 무섭기로 소문난 체조 선생님은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에게 모두 웃옷을 벗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추위 따위는 무서워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옷을 벗고 셔츠 바람으로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창남이는 옷을 벗지 않는 것이었어요. 선생님은 당연히 화가 나셨죠. 하지만 창남이는 웃옷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남이는 추운 겨울날에도 하나의 옷 밖에는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아이들도 고개를 숙였죠. 그렇지만 우리들의 창남이는 그만한 일에 주눅들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창남이는 말했죠. 내 옷 속에는 사계절을 입어도 닳지 않는 만년 샤쓰가 있다고요. 창남이는 부끄러운 알몸을 그렇게 말했던 거였고, 그때부터 그 아이의 별명은 '만년 샤쓰'가 되었답니다.

창남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가난의 고통을 속으로 삭이며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 동네에 큰 불이 났을 때도 이웃의 할아버지를 먼저 걱정하고, 눈 먼 어머니에게 양말을 벗어드리고 겨울날 맨발로 학교에 나오던 아이. 그래도 마음 속에는 언제나 커다란 무지개를 품고 살던 아이.

지금 우리들 곁에도 창남이 같은 아이가 있을 지 몰라요. 힘든 일이 있지만 꿋꿋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말입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은 바로 따스한 말 한 마디겠지요.

<만년 샤쓰>는 우리 나라 동화 문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놓인 작품입니다. 방정환 선생이 지은 이 단편동화는 1927년 잡지 <어린이>에 처음 발표됐지요. 이 작품은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생동감 넘치는 동화의 주인공을 창조해냈고, 그 인물을 통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눈물겨운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년 샤쓰>를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 속의 매력적인 주인공 '창남이'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창남이는 외국 동화의 주인공인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가 지니지 못한 씩씩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우리 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 속을 기운차게 달리고 있지 않던가요.

목욕탕에 가서 윗옷을 벗고 커다란 거울 앞에 설 때면 가끔씩 창남이가 생각납니다. 꿋꿋한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내 몸의 맨살, 변치 않는 만년 샤쓰를 톡톡 두드려 보곤 한답니다.(최덕수)

* 어제 구름바다님 병문안 갔을 때 이야기가 된 <만년샤스>의 요약 줄거리입니다. 책 소개하는 글에서 퍼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각, 아마 구름바다님 병실 바깥에는 반딧불이 날고 있겠네요. 구름바다님껜 큰 위로가 돨 것 같기에......
반딧불이 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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