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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0 07:41

베개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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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어머니는
명주옷을 뜯어 오색 물을 들여
자신의 수의를 짓기 시작했다
치마, 저고리, 베개,손싸개......
그리곤 한지에 이름을 오려 써서
사이사이 가지런히 꽂아 놓았다
틈만 있으면 어머니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싶어했다
죽음을 나누고 싶어서였을까?
공포를 만져보고 싶어서였을까?
그 때마다 오빠는 바쁜 척 사라져버리고
나는 얼굴을 가리고
다른 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촌이나 오촌들이 오면
그것을 꺼내 놓았다
나는 죽음옷 준비가 다 됐다고
날 받아놓은 신부가
혼수를 펴놓고 자랑하듯 했다
친척들은 모두 대접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볼일이 있어서 곧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것을
끈 떨어진 여행가방에 담아
아파트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저기 있다.잉'
'필요할 때 당황 말고 척 찾아써라.잉'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한 새벽에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할 때를 남겨주고
조용히 떠나갔다
삭은 낙엽처럼 가라앉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처마 밑을 가리켰고
사람들은 그 가방을 열고 수의를 꺼냈다
아아, 거기에서 파르르!
한 마리 나비가 날았다
서툰 어머니의 조선 글씨가
포로롱거렸다
베개......베개......베개......베개......
어머니는 땅에 묻히고
나비는 남았다 .남아서는
밤마다 내 머리맡,
피로 도려낸 벼랑 위에서
흰 칼춤을 추었다
이승과 저승을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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