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 > 정겨운속삭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겨운속삭임

|
10-02-10 17:27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
돌샘 이재영

혹자는 궁궐 같은 집을 선호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절세가인 부인을 원하지만 나는 정원이 아름다룬 집을 택하리라. 그러나 원하는 집에 한 번도 살지 못했지만, 30대에 넓은 정원이 있는 집에 산 적이 있다. 이 집은 범어성당 서편 하천가에 있는 240평 부지였다. 원전 70평 위에 주택과 작은 정원이 있었고, 하천 위엔 계사가 담장이 된 집이다. 어느 대학 농대 축산과 교수가 살던 집이다. 계사를 방으로 꾸며 여섯 가구가 오순도순 살았다.
원채 앞 정원엔 가이즈까향나무와 금잔디를 심고 둘레엔 채송화가 연중 핀다. 정원 한 쪽에 탁구대가 놓여 아이들의 친구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그러나 헛간을 헐고 현관 앞에는 정원석과 반송 철쭉 연산홍 금잔디로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꿈이다. 서편엔 100여 평 공지가 있었다. 만생종 신고배나무 10여 그루와 조생종 두어 그루, 수밀도 복숭아 한 그루를 심었다. 집안에 조그마한 과수원이 되었다. 나무 사이에는 온갖 채소가 자란다.
하천가라 모래와 자갈땅으로 일 주일만 가물면 채소가 시든다. 그런데도 나무는 잘 자랐다. 삼사 미터 지하엔 물 천지라 파이프를 박고 모-타로 지하수를 퍼 올렸다. 정원과 허드렛물은 이 물을 사용하니 식물을 키우기는 적지였다. 삼 년이 지나니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과일이 열렸다. 첫해는 꽃만 보고 과일은 다 땄다. 우리 집엔 봄이 오면 꽃동산이다. 활짝 핀 배꽃 가지에 보름달이 걸리면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온다. 배꽃은 요조숙녀요, 복숭아꽃은 요염한 요정 같다. 밤 깊으면 뒷문 밖 성당 숲에서 소쩍새가 운다. 도시 한복판에 심산유곡의 운치가 흐른다. 아름다운 봄밤이 지나가는 안타까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큰 기쁨을 주는 것은 배나무다. 꽃이 곱기도 하지만 꽃이 지면, 염주 같은 열매가 조롱조롱 맺는다. 드문드문 하나씩 두고 다 따주었는데도 일주일이 지나면 또 빡빡하다. 열매가 자라는 모습이 자식처럼 귀엽다. 단 번에 사정없이 속아야 열매가 충실하다. 그러나 손이 떨려 몇 번을 따주어야 알맞게 단다. 그러면 가을에는 어린이들의 머리통 같은 큰 배가 주렁주렁 달려 온 집안을 장식한다. 배가 황금빛으로 물들면 광택이 자르르 흐르며 열아홉 살 처녀 같이 아름답다. 한 입 꽉 깨물면 향내가 진동할 것 같고, 달콤한 물이 입안을 녹일 것만 같아 군침이 돈다.
그러나 두고 보는 것이 더 좋아 함부로 딸 수가 없다. 이 때 오는 사람마다 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 집은 부자다. 이 집은 낙원이요 선경 같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하며 부러워한다. 시장에 배는 봉지를 씌워둔 채 수확 후 팔면서 익는다. 그래서 배의 빛깔이 선명하지 않고 죽은 빛이다. 참신한 맛도 나지 않는다. 우리 배는 나무에서 햇볕을 받으면서 완전히 익은 후에 따기 때문에 어느 배보다 맛이 좋고 황금빛로 윤기가 흐른다.
어느 과일이나 나무에 달려 익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배만큼 탐스러운 것은 본 적이 없다. 이 배는 과육 질이 보드랍고 사박사박하며 감미가 짙고 물이 많아 입 안에 넣으면 저절로 사르르 녹는다. 어디 그 뿐이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나무를 가꾸는 기쁨이다. 나는 배밭에서 일하면 밥 먹는 것조차 잊는다. 그 만큼 나의 기쁨은 언제나 절정이다. 구경하는 이웃들도 기쁨을 공감한다 하니 더 즐겁다. 우리는 언제나 모두 한 식구가 되어 배의 아름다음과 향기를 함께 나누며 즐긴다. 또 길흉사엔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정이 깊어간다.
친구들과 매화산을 오를 때 이 배를 서너 덩이 갖고 갔다. 그들은 짐을 덜려고 등산 초입부터 과일을 서로 내놓았다.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정상에 오르니 과일도 물도 다 떨어졌다. 목이 바삭바삭 탔다. 그 때 배를 내 놓았다. 모두 배의 크기에 깜작 놀랐다. 깍은 배를 한 입 꽉 깨물더니 또 놀란다. "이렇게 향이 좋고 맛있는 배는 처음 먹어본다." "이것이 배의 진미이구나!" 한다. 세월이 10년 지난 뒤에도 친구들은 그 배를 찾았다.
내가 아직도 그 집을 잊지 못하는 것은 한 집에 여러 가구가 10년 이상 살았어도 말다툼한 적이 없었다. 아주머니 들은 우리배추 씻어 점심만은 밖에서 함께 먹고 가을에는 배로 후식을 든다. 남자들은 산행을 가끔 했다. 그 시간은 웃음꽃이 피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즐거움도 이 아름다운 정원 과 배의 향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불편한 집에서도 이사 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웃과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을 나누면서 다정하게 지냈다. 이러한 화해무드가 조성된 것도 아름다운 정원과 배향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때 나는 대학생 세 명에, 해마다 공납금보다 더 많이 나오는 화천부지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이 집을 팔고 말았다. 어디 간들 이보다 아름다운 정원과 배맛 같이 싱그럽고 향기 나는 이웃들이 또 있을까? 그렇게도 찾고 갖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정원이 여기인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은 모두 잘 살지만 만나면 반가워 서로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모른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라 배 향기 같은 그분들과 아름다운 정원을 잊지 못한다.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91 2011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인기글 미소년 이름으로 검색 2011-01-03 2844
6990 Shall we dance? 2 인기글 조르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10-28 2602
6989 답변글 시를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착한여자님!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3-10-18 2031
6988 바다 인기글 로즈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6-11-07 1961
6987 베개 (문정희) 인기글 목련 이름으로 검색 2019-06-20 1960
6986 오늘은 제809회 물빛 정기모임입니다 인기글 하이디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7-02-28 1938
6985 2013년도 신춘문예 당선작 인기글 미소년 이름으로 검색 2013-01-01 1937
6984 매일신문에 소개된 <물빛동인> 인기글 침묵 이름으로 검색 2006-01-18 1871
6983 답변글 감사합니다.^^ 인기글 카타르시스 이름으로 검색 2013-12-27 1834
6982 답변글 만년샤스/방정환 인기글 추임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7-14 1826
6981 답변글 부처~~~~~~김형영 인기글 카타르시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7-01 1809
6980 지리산 토종벌꿀 소개 인기글 두칠이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11-23 1692
6979 주는 것`````서범석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4-09-23 1676
6978 답변글 선생님, 인기글 착한 여자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5-19 1672
6977 답변글 정해영 시인의 시집 <왼쪽이 쓸쓸하다> 출판기념회8 인기글 침묵 이름으로 검색 2014-05-28 1670
6976 오늘은 물빛 제774회 모임입니다. 인기글 목련 이름으로 검색 2015-09-08 1658
6975 답변글 토론작품입니다. 꾸벅^^ 인기글 카타르시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5-01-27 1652
6974 답변글 작품 입니다.^^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4-04-21 1635
6973 제916회 물빛 시토론회 인기글 해안1215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7 1629
6972 답변글 회장님,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꾸벅^>^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5-02-26 1628
6971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작 인기글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0-01-04 1626
»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 인기글 돌샘 이재영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0-02-10 1624
6969 답변글 목련님^^ 인기글 목련 이름으로 검색 2014-08-09 1622
6968 답변글 안녕 *^^* 인기글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7-07-31 1621
6967 답변글 넵. 회장님*.*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5-09-30 1609
6966 오늘은 물빛 정기모임입니다. 인기글 카타르시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5-13 1604
6965 내일은 제811회 물빛 정기모임입니다 인기글 하이디 이름으로 검색 2017-03-27 1603
6964 2012 신춘문예 당선작 인기글 미소년 이름으로 검색 2012-01-03 1591
6963 내일은 843회 물빛 정기모임 날입니다 인기글 서강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8-08-13 1591
6962 해인사 소리길 인기글 돌샘 이재영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3-11-12 1582
6961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인기글 미소년 이름으로 검색 2014-01-04 1579
6960 답변글 물빛 서랍^^ 인기글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3-07 1577
6959 회상속에 깃든 삶의 원형에 대한 탐구```나호열시인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5-05-14 1576
6958 詩의 묘사와 진술 인기글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06-06-14 1520
6957 8월 22일 (화요일)물빛 모임, 가창 정대리 <루소의 숲> 인기글 추임새 이름으로 검색 2006-08-18 1513
6956 컴에 저장된 사진 크기 줄이는 법 인기글 두칠이 이름으로 검색 2006-05-11 1510
6955 앞산, 물빛 산행 안내 (3.25/토) 인기글 침묵 이름으로 검색 2006-03-21 1501
6954 내일은 물빛 정기모임입니다 인기글 카타르시스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4-08-25 1501
6953 답변글 영남일보에 소개된 김학원 선생님의 시집 인기글 목련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5-07-29 1498
6952 876회 정기 모임 후기 인기글 조르바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20-01-29 1493
6951 Resham firiri (레섬삐리리) 인기글 맥가이버 이름으로 검색 2006-04-12 1486
6950 2011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인기글 미소년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1-01-03 1469
6949 모레는 물빛 785회 정기모임입니다 인기글 로즈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6-03-06 1465
6948 답변글 가지취와 섶벌에 대한 정보 고맙습니다. ^^ 인기글 우주 이름으로 검색 2015-04-12 1458
6947 답변글 ****^^**** 인기글 메나리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13-02-25 1445
6946 신예<미래파> 시 읽기 인기글 카라 이름으로 검색 2006-02-28 1444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