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생략된 시 같습니다.
제각기 색깔을 가진 단독자, 인간이 모여서 함께 사회적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혼자인 삶을 찾아 떠난다는 스토리?
그래도 유목하는, 떠도는, 방랑하는 인생은 즐겁다는 해피 앤딩??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구가하고픈 노래라고 보기에는
사람들과의 친교와 애교(?)가 더 잘 나타나 있어
방랑하는 인생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시인의 밝음, 명랑, 긍정적(건설적) 마인드 등을 느꼈습니다.(조르바)
“푹 익은 단풍나무”에서 단풍나무를 익었다고 본 것은 어색.(서강)
감이 ‘익었다, 삭았다’ 같은 열매와 관련된 느낌을 받습니다.
조르바는 단풍나무를 보면 ‘나무가 핏빛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규석 시인께서는 농익은, 푹 무른?, 성숙에 이른?, 감각적인 사물(물질)로 파악하시는 듯합니다. 이성적인 표현 같습니다. ㅎㅎ
애기 단풍잎이 2연에 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을나무 단풍 전체를 지칭한다기보다
단풍나무처럼 알록달록한 인생살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하는 인생살이가 그래도 “내년에 또 보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교훈적이라고나 할까요?(조르바)
그런데 웃고 우는 것이 자칫 감상의 과잉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함께 왔다가/홀로 떠나도”에 대하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 것은 곧 인간이 정치적 동물임을 뜻하는 말과 같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모여 살면서 타인이나 공동체와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문화를 익히며 삽니다.
따라서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질서, 규칙, 예의 등이 필요하지요.
사회 유지를 위해 규약을 만들지만(정치적 동물의 속성)
이것은 작위적인 것들일 수 있기에
단독자로서의 인간은 끊임없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합니다.
본래성, 자연(nature),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겠지요.
그런 돌아감의 과정으로서의 인간 고뇌가
“함께 왔다가/홀로 떠나도”라는 표현 속에 용해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주셨습니다.
노마드적인 정서가 시의 전면에 펼쳐져야, 이 용어가 돌올하게 느껴지지 않겠다는 지적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