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開闢
- 김일손,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한밤중이 되자 하늘과 땅이 환히 열려 넓은 들이 아득히 펼쳐졌다. 흰 구름이 산골짝에 잠든 것이 마치 푸른 바다 조수 위의 수많은 포구로 흰물결이 눈을 몰고 오는 것만 같았다. 산봉우리가 드러난 것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듯하였다. 돈대에 기대어 올려다보고 굽어보노라니 정신이 온통 서늘해져서 이 몸이 개벽하던 태초의 위에 있어 마음이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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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밤을 지샐 때의 기록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