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드러내다
자연이나 외부세계가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평소에는 드문 일인데
갑자기 비상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주산지”는 가고 싶어서 무척 기다렸던 곳인데
설렘을 안고 찾아간 그곳에서 바닥을 드러낸 주산지를 보게 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해서 자기희생과 자기헌신을 아끼지 않듯이
농사에 젖줄을 대고 있어야 할 주산지의 저수율이
형편없었나 봅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저분한 바닥이라는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네요
무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주산지의 민낯이 인간의 민낯으로 연결되는군요.
추하고 황폐화된 인간의 모습,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을 하지 않은 어그러진 인간의 내면이 보이고 맙니다.
“외면하고 싶은 얼굴”(서강님의 표현) 말입니다.
그것이 “저 깊은 곳에서/ 나의 바닥이 움찔”하는 충격을 줍니다.
근원적인 조응(correspondence)
그 묵직한 울림을 독자들도 느끼고 독자들 개개인의 ‘자기 바닥’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시란 이렇게 대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세계의 자아화와 관련되는 일임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