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르는 속살/ 밤마다 식힌 강 하구에/ 두꺼운 굴레 벗어던지고/ 쌓인 한 먹 고 자란 고기떼/ 짚어주는 길 따라/ 조심스레 걸어나오는 조선여자들/ 흑백사진 속 불어난 젖이 즐겁다'
대구 여성시가 예사롭지 않다. 여성시가 더 남성적이고 힘을 가진 듯 하다. 나약 한 남성들을 쓰다듬고 달래어 전쟁터로 내보내야 할 형편이니 남성들이란 숫제 나 약하고 불쌍해서 더이상 싸울 상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성으로 감싸고 있다. 어둔밤 달아오르기 살뜰히 기다리는 '향피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제대로 불어줘야 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정이 편하고 세상이 잘 돌아 가는데..., 대구의 여성시인들은 속이 탄다.
현재 대구에서 활동 중인 여성시인들은 약 70여명. 가정에서의 고유 역할 때문에 자꾸만 지워져 가는 자아를 돌이키고 여성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내면성찰 끝에 무게있고 힘을 가진 시작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보수적이라는 대구에서조차 남성들의 체면이 말이 아닌 요즘의 시대적 반영일까. 보다 강한 남 성에 대한 희구인가.
정 숙 시인(52.대구문학아카데미 회장)이 지난 주말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 열린 대구시인협회 봄 세미나에서 밝힌 '대구 여성시의 빛깔과 전망'이란 주제발표 내 용을 살펴봐도 그렇다. 강한 페미니즘을 드러내거나 사유의 깊이가 있는 작품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먼저 1985년에 출간된 박정남 시인(대구시인협회장)의 시집 '숯껌정이 여자'는 일 찍이 여성의 원초적 생명력을 대담하게 묘사, 당시 문단에서 '감각이 신선하다'는 평을 내린적이 있다.
박소유의 시집 '사랑 모르는 사람처럼'중 '밥'.'젖이 있는 사진' 등의 시와 정화 진의 시집'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 등도 페미니즘적 요소를 드러낸 경 우에 속한다. 백미혜의 두 번째 시집 '에로스의 반지'와 정 숙의 시집 '신처용가' 중 '대금연주'는 성행위를 추하지 않는 해학으로 과감하게 그린 작품으로 평가된 다.
유자란 시인은 '사파이어 녹색부전나비'에서 기다림과 순응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의 슬픔을 자각하며, 강문숙 시인은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에서 잠궈도 잠궈도 버릴 수 없는 원초적 욕구 때문에 괴로워한다.
강혜림 시인은 '구름사원'에서 내면의 성찰을 통한 고백성사 같은 깊은 맛을 보여 주면서도 때로는 '부드럽게 조였다가 풀어주는, 몽키 스패너/ 같은 남자 거기 없 나요?'라며 건강한 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재숙 시인의 경우 자신을 '고장난 시계'로 자조했는가 하면 문차숙.박주영 시인 은 소외와 욕망으로 뭉친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지만 모성의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외 많은 여성시인들도 페미니즘적 경향이 강하지는 않지만 소외와 욕망에 대한 치열한 내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남성시인들이 오히려 더 여성적이고 달콤한 페미니스트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박정남 대구시인협회장은 "이규리.안윤하.전성미.이명숙.이은림.장혜랑.박숙이.서 하 .정이랑 등 여성의 따스함과 서정적 자아를 부각시키고 있는 신진들도 많아 대 구 여성 시의 전망이 아주 밝다"면서도 "여성시의 치열성이나 사유의 깊이에도 불 구 아직도 남성 위주의 사회적 벽은 높다"고 지적했다.
매일신문/ 2001.05.16/ 조향래기자(swordjo@imaeil.com)